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장이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센터 사무실에서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포유동물로 아가미가 없는 고래는 수면으로 올라와 호흡하고 동료와도 교류한다. 몸에 문제가 생겨 이 활동이 어려워진 고래가 있으면 주변 고래가 등으로 밀어 수면까지 올려준다. 무탈한 고래가 아픈 개체의 생존을 돕는 것이다. 이런 고래의 지혜에 착안해 고립은둔청년(은둔형외톨이)과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의 사회적 자립을 지원하는 단체가 있다. 2014년 고립 청년 대상 공동생활 그룹홈으로 출범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다.
단체의 출발에는 2003년부터 자택에서 가출·탈북 청소년과 동고동락한 한 부부의 헌신이 있다. 센터 설립자인 남편은 현재 도시 빈민 자활시설이자 무료 급식소인 바하밥집 김현일 대표다. 아내 김옥란(52) 센터장은 각종 위기로 고립 위기를 겪는 청년의 자활을 돕고 있다. 20여년간 도시 빈민을 품어온 김 센터장을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환대와 안전이 절실한 청년들]
빈곤 청소년에게 집을 개방한 지 3년 만에 이들을 모두 자립시킨 김현일 대표는 2009년 도시 빈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바하밥집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김옥란 센터장은 야근과 해외 출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평범한 무역회사 직장인이었다. 조력자로만 활동하던 그가 고립 청년 돌봄에 본격 나선 것은 2017년부터다. 조현병을 앓는 고립 청년의 사회 복귀를 돕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얻은 남편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자 김 센터장은 그날로 12년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부부는 2014년 ‘카페 브룩스’를 세워 사회 적응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바리스타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서 불안정, 동료와 손님 간 갈등 등으로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적잖았다. 그럼에도 알음알음 부부를 찾아오는 청년은 점점 늘고 있었다.
이때 그가 던진 승부수는 ‘자비량 해외연수’였다. 노후 대비용 퇴직금을 털어 리커버리 카페(Recovery Cafe) 등 미국 시애틀의 고립·중독 청년 지원단체들을 한 달간 탐방했다. 김 센터장은 “남편 대신 고립 청년을 돕겠다고 퇴직하고 사회복지학 공부도 시작했지만 이들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며 “방문한 미국 기관에서 자문을 얻으면서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그가 발견한 해결책은 고립 청년에게 가장 먼저 ‘환대’와 ‘안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여러 단체를 방문하며 이들에게 일자리보다 급한 건 ‘회복’이라는 걸 알았다”며 “환대를 제공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자존감을 회복시킨 뒤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2020년 지금의 공간을 열었다”고 말했다.
[고립 탈출 비결은 환경·사람·시간]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가 운영하는 리커버리 야구단 소속 고립 청년들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동두천 신흥중학교에서 야구를 배우고 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제공
센터 설립에 앞서 미국을 다녀온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현재 센터의 대표 회복 프로그램인 ‘리커버리 야구단’이다. 방 밖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매주 야구 훈련으로 공동체를 경험케 하고 자립 의지를 심어주는 게 목표다. 야구단 초대 총재는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매달 1회씩 전문 야구인의 지도도 받는다. 이외에도 스스로 점심을 마련하고 함께 식사하는 ‘쿠킹 런치’ 모임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심리를 알아보는 ‘기지개 모임’, ‘리커버리 예술단’ 활동 등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센터는 고립 청년의 부모를 위한 교육도 열고 있다. 부모 역시 고립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잖아서다. 그는 “우리는 이들 부모에게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방 안에서 안 나온다는 이유로 다 큰 성인을 육아하듯 대하면 자녀의 자립은 요원해진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3요소는 환경 사람 시간”이라며 “새로운 환경과 생경한 사람을 접하며 평소 자신과는 색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사용할 때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완전한 회복은 복음에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동대문구 동네극장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연극을 선보이는 청년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제공
김 센터장은 결혼 이후 나들목교회(김형국 목사)에서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했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믿음을 가진 결정적 계기는 “하나님이 아버지처럼 따뜻한 존재로 믿어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걸 결핍으로 여기며 살아온 김 센터장이었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이를 극복했다. 그는 “인간의 완벽한 회복은 복음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내 삶이 ‘산증인’”이라며 “나처럼 진정한 회복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말투와 태도를 갖추며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 센터장의 삶을 보고 신앙의 길로 들어선 청년도 꽤 된다. 센터 사업엔 종교색이 전혀 없지만 그에게 개인사를 묻다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다. 이들을 위해 김 센터장은 매주 토요일 성경을 읽고 한 주간의 삶을 나누는 ‘회복 모임’을 연다. 이 가운데 세례를 받고 지역 교회에 출석 중인 청년은 11명에 달한다.
센터의 향후 목표는 교육과 회복 프로그램, 자립 훈련과 공동생활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직업 교육장과 레스토랑을 갖추고 음식은 지역 노숙인에게 기부하는 미국 복지기관 ‘페어 스타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아픔으로 고립을 택한 청년을 사람과 세상에 연결하는 길잡이 역할을 잘 해내는 기관이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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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장이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센터 사무실에서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포유동물로 아가미가 없는 고래는 수면으로 올라와 호흡하고 동료와도 교류한다. 몸에 문제가 생겨 이 활동이 어려워진 고래가 있으면 주변 고래가 등으로 밀어 수면까지 올려준다. 무탈한 고래가 아픈 개체의 생존을 돕는 것이다. 이런 고래의 지혜에 착안해 고립은둔청년(은둔형외톨이)과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의 사회적 자립을 지원하는 단체가 있다. 2014년 고립 청년 대상 공동생활 그룹홈으로 출범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다.
단체의 출발에는 2003년부터 자택에서 가출·탈북 청소년과 동고동락한 한 부부의 헌신이 있다. 센터 설립자인 남편은 현재 도시 빈민 자활시설이자 무료 급식소인 바하밥집 김현일 대표다. 아내 김옥란(52) 센터장은 각종 위기로 고립 위기를 겪는 청년의 자활을 돕고 있다. 20여년간 도시 빈민을 품어온 김 센터장을 지난 4일 서울 성북구 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환대와 안전이 절실한 청년들]
빈곤 청소년에게 집을 개방한 지 3년 만에 이들을 모두 자립시킨 김현일 대표는 2009년 도시 빈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바하밥집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김옥란 센터장은 야근과 해외 출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평범한 무역회사 직장인이었다. 조력자로만 활동하던 그가 고립 청년 돌봄에 본격 나선 것은 2017년부터다. 조현병을 앓는 고립 청년의 사회 복귀를 돕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얻은 남편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자 김 센터장은 그날로 12년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부부는 2014년 ‘카페 브룩스’를 세워 사회 적응을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바리스타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서 불안정, 동료와 손님 간 갈등 등으로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적잖았다. 그럼에도 알음알음 부부를 찾아오는 청년은 점점 늘고 있었다.
이때 그가 던진 승부수는 ‘자비량 해외연수’였다. 노후 대비용 퇴직금을 털어 리커버리 카페(Recovery Cafe) 등 미국 시애틀의 고립·중독 청년 지원단체들을 한 달간 탐방했다. 김 센터장은 “남편 대신 고립 청년을 돕겠다고 퇴직하고 사회복지학 공부도 시작했지만 이들을 회복시킬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며 “방문한 미국 기관에서 자문을 얻으면서 이들을 어떻게 대할지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그가 발견한 해결책은 고립 청년에게 가장 먼저 ‘환대’와 ‘안전’을 제공하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여러 단체를 방문하며 이들에게 일자리보다 급한 건 ‘회복’이라는 걸 알았다”며 “환대를 제공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자존감을 회복시킨 뒤 일자리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2020년 지금의 공간을 열었다”고 말했다.
[고립 탈출 비결은 환경·사람·시간]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가 운영하는 리커버리 야구단 소속 고립 청년들이 지난달 28일 경기도 동두천 신흥중학교에서 야구를 배우고 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제공
센터 설립에 앞서 미국을 다녀온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건 현재 센터의 대표 회복 프로그램인 ‘리커버리 야구단’이다. 방 밖에 나서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매주 야구 훈련으로 공동체를 경험케 하고 자립 의지를 심어주는 게 목표다. 야구단 초대 총재는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매달 1회씩 전문 야구인의 지도도 받는다. 이외에도 스스로 점심을 마련하고 함께 식사하는 ‘쿠킹 런치’ 모임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심리를 알아보는 ‘기지개 모임’, ‘리커버리 예술단’ 활동 등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센터는 고립 청년의 부모를 위한 교육도 열고 있다. 부모 역시 고립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적잖아서다. 그는 “우리는 이들 부모에게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자주 말한다. 방 안에서 안 나온다는 이유로 다 큰 성인을 육아하듯 대하면 자녀의 자립은 요원해진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3요소는 환경 사람 시간”이라며 “새로운 환경과 생경한 사람을 접하며 평소 자신과는 색다른 방법으로 시간을 사용할 때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완전한 회복은 복음에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동대문구 동네극장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연극을 선보이는 청년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제공
김 센터장은 결혼 이후 나들목교회(김형국 목사)에서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했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믿음을 가진 결정적 계기는 “하나님이 아버지처럼 따뜻한 존재로 믿어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읜 걸 결핍으로 여기며 살아온 김 센터장이었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서 이를 극복했다. 그는 “인간의 완벽한 회복은 복음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내 삶이 ‘산증인’”이라며 “나처럼 진정한 회복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말투와 태도를 갖추며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 김 센터장의 삶을 보고 신앙의 길로 들어선 청년도 꽤 된다. 센터 사업엔 종교색이 전혀 없지만 그에게 개인사를 묻다 복음에 관심을 갖게 된 이들이다. 이들을 위해 김 센터장은 매주 토요일 성경을 읽고 한 주간의 삶을 나누는 ‘회복 모임’을 연다. 이 가운데 세례를 받고 지역 교회에 출석 중인 청년은 11명에 달한다.
센터의 향후 목표는 교육과 회복 프로그램, 자립 훈련과 공동생활을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직업 교육장과 레스토랑을 갖추고 음식은 지역 노숙인에게 기부하는 미국 복지기관 ‘페어 스타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아픔으로 고립을 택한 청년을 사람과 세상에 연결하는 길잡이 역할을 잘 해내는 기관이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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