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머니투데이] [MT리포트] 외톨이 선택한 청년들② (2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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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외톨이 선택한 청년들②

"따돌림 당한 아들, 집 밖을 안 나가요"…대책도 통계도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3년 전 아들이 방에 숨어버렸다는 이모씨(55). 그는 처음 아들이 3일간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라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방에서 오래 나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며 "그게 몇 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씨의 아들 A씨는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런지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학교에 찾아가니 아들이 친구들과 사이가 틀어지고 오랜 시간 따돌림을 당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씨는 "아들에게 전학도 권유했지만, 거기서도 다 자기를 싫어할 거라고만 했다"며 "두 달이 지나서야 아들이 '은둔형 외톨이' 증세가 있단 걸 인식했다"고 털어놨다. 고통스러운 건 A씨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가족 모두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며 "남들에게 말을 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사회가 만든 '고립청년'…정확한 통계 없어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이씨와 같이 '은둔형 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립의 시간을 함께 견딘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국내에선 고립·은둔청년(이하 고립청년)에 대한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고립청년 숫자는 매년 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청년의 사회적 고립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조사대상 청년 2041명 중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돼 있다고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13.4%였다. 또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는 응답자는 16.6%에 달해 10명 중 1명 이상은 고립감을 느꼈다. 평소 잘 외출하지 않고 주로 집에만 머문다는 비율은 5.1%로 2019년(3.2%), 2020년(4.7%)보다 높아졌다. 지난해 5월 기준 통계청 청년층 인구인 879만9000명으로 추정치를 계산해보면 약 45만명 정도 고립청년인 셈이다.


관련 실태조사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2019년 청년재단이 발간한 '은둔형 외톨이(고립청년) 실태조사'가 이들의 현실을 알려준다. 재단은 고립청년 47명과 고립청년의 부모 34명, 총 81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고립청년의 나이는 20~29세 사이가 80.8%로 가장 많았고, 남자(31명)가 여자(16명)보다 더 많았다.


"온라인 공간에서 시간 보냈다"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그래픽=김다나 디자인기자


특히 고립청년 대부분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거나 1~2명의 제한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응답자의 대부분이 상담센터나 정신과 치료를 받았으며 약물치료 경험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식사는 대부분 2끼 이상이고 수면의 질도 양호한 편이었으나,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인터넷 게임이나 스마트폰 사용에 할애하고 있었다.


실제로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한 고립청년들도 방 안에 숨어 지내는 동안 주로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답했다. 6년간 고립생활을 한 최모씨(30)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고, 주로 컴퓨터 게임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3년간 방 안에 머물렀던 박모씨(30) 역시 "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영화를 봤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고립의 계기로 대인관계 유지의 어려움, 학교생활 부적응, 학업·취업 실패 등을 꼽았다. 2019년부터 3년째 고립청년으로 지내고 있는 김모씨(29)도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관계에서의 서투름 때문에 은둔하게 됐다"고 답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청소년 시절 따돌림을 당했거나, 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청년들이 많았다.


고립기간은 1~2년이 가장 많았고, 고립 직전이나 초기에 어떻게든 집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만 5년 이상 장기화되면 깊은 절망감과 무기력함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14년부터 고립청년을 돕고 있는 김옥란 푸른고래리커버리 센터장은 "고립청년에게도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당장 잡아줄 수 있는 기관이나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구체적인 실태조사에 맞춤형 지원 필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립·은둔청년 지원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미술치료 활동 모습 /사진=김지현 기자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고립·은둔청년 지원기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 미술치료 활동 모습 /사진=김지현 기자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실태조사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5월 국정과제 발표에서 가족돌봄청년, 자립준비청년과 함께 고립청년을 취약청년으로 묶고 실태 파악 및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전문기관 육성이 필요하다"며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간사, 사무 등 최소 필요 인력에 대한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각 복지관에도 상담서비스가 있지만,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일자리 마련이나 자격증 제공이 아닌 체육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김 센터장은 "신체활동 등을 하며 자연스레 타인과 교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게 좋다"고 전제한 뒤 "미술치료, 인문학 수업을 통해 완성한 성과물을 선보이는 전시회·공연도 도움이 된다"면서 "따돌림이나 잦은 실패로 낮아진 자존감을 올릴 수 있게 성취감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고립청년은 니트(NEET·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가 없는) 청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심리적인 건강함을 보장할 수 있게 작은 부분이라도 성공 경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들이 먼저 이뤄지지 않은 채 취업 위주의 지원만 이뤄진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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