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중앙일보] 고립·은둔 청년 5%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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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태취재 | 고립·은둔 청년 5% 시대

연애·결혼 NO, 혼자 노는 게 좋은 요즘 MZ들

“시간과 돈 충분치 않은데, 연인까지 사귈 여유 없어… 혼자가 좋아”
연애·결혼 기피가 고립·은둔 일상화로 이어져 저출산 등 사회문제로

‘무(無)연애’를 택하는 MZ세대가 늘고 있다. 사진은 혼밥을 즐기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요즘 MZ세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3명 중 2명꼴로 ‘연애’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성을 사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혼자가 편해서’다. 혼자 사는 데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경기도 화성시에 사는 대학생 양모(22·여) 씨가 그렇다. 그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지만 연애를 하는 또래 친구들이 부럽다거나 조급함, 아쉬움 같은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 그는 “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들과 재미있게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양씨가 ‘무(無)연애’ 삶을 사는 이유는 뭘까? 우선 양씨는 “너무 바쁘다”고 말했다. “매주 독서모임도 하고 있고, 얼마 전부터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다. 방학이라 친구들과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필리핀 세부로 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그는 “악기를 새로 배우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덕질’도 오래된 취미다”며 “이런 것들을 위한 시간과 돈도 충분치 않은데, 연인까지 사귈 여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양씨는 이성을 사귄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연애를 하려면 현재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데, 그만큼 그 연애라는 게 내게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네 명의 친구가 있는데, 그중 연애하는 친구는 딱 한 명뿐”이라며 “내 주변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이모(28·여) 씨도 연애 없는 삶을 즐기는 솔로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이씨는 “내가 하는 일과 취미생활만으로도 바쁘다. 연애를 해서 현재의 내 삶의 박자를 굳이 어지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러 연애를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소개팅 등 연인을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조만간 외국 유학 계획이 있는데, 연인을 사귀면 내 삶에 ‘짐’이 될 것 같다”며 자신이 지금 열정을 쏟고 있는 학업 문제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인생에서 ‘화양연화’의 시기인 20대 청춘인 양씨와 이씨에게 지금 연애는 삶의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영원히 연애도 결혼도 자녀 출산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일까? 양씨는 “나는 비혼주의자까지는 아니다. 결혼이나 자녀 계획이 없진 않지만, 그것도 아직은 막연한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녀를 갖는 것에는 다소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그는 “내 미래 세대와 자녀가 짊어질 부담이 커 보여서”라고 말했다.

이씨 역시 “가족을 꾸리고 싶은 마음은 늘 있다”며 결혼과 출산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이씨는 “결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기에 연인이 없는 지금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가치관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다만 자녀 계획에 대해서는 “일과 관련된 내 목표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후에야 가능할 것 같다. 자녀를 갖는 것은 경제적 여유 등 현실적 조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솔로는 지옥이라고? 솔로가 천국!

서울시는 지난해 ‘고립·은둔 청년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 사진:서울시의회

MZ세대 남자들도 연애하기에는 너무 바쁘다. 경기도 포천에 거주하는 장모(25) 씨는 “시간과 돈이 없다”고 말했다. 장씨는 최근 작곡을 배우는 등 음악 작업을 취미로 삼고 있는데, 포천에서 서울까지 통학하는 데만 해도 하루에 왕복 3~4시간은 소요된다. 교통비는 물론 작곡을 배우는 레슨비와 작업실 대여비 등 지출이 많다. 그는 “쉬는 날에는 반려동물과 산책을 하거나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게 삶의 낙이다”고 말했다.


장씨도 피가 끓는 청춘인지라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가끔 길에서 연인들을 보거나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연애하는 친구들이 연인 간에 연락이 잘 안 된다거나 다툼 등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대로가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씨는 “나중에 결혼할 생각도, 자녀 계획도 있지만, 그것도 일단 직업을 가지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김모(23·남) 씨도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장씨와 비슷했다. 김씨는 “심적으로 여유가 없다. 나 하나 챙기기도 바쁘다”면서 “IT계열 취업을 위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며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다. 학교와 스터디 카페를 오가는 일상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연애를 하게 되면 연인을 위한 이벤트도 준비해야 하고 연락도 자주 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 돈도 문제다. 부모님께 더 손 벌리지 않고 연애까지 하려면 알바를 해야 할텐데 그럴 시간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남는 시간에는 연애 대신 취미 생활을 한다고 했다. 김씨는 “내 취미는 쇼핑이다.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휴일에는 빈티지 숍이나 팝업스토어를 가며 시간을 보낸다. 요즘 이런 곳들이 워낙 많아서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미식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 곳곳의 맛집을 방문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내 삶에서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건 나 자신”이라며 “취업 준비와 자격증 공부를 하며 우선 나를 완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취업 불황, 치열한 경쟁 등 ‘내 앞가림’하기도 어려워진 MZ세대에게는 연애가 ‘사치’인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 남녀 10명 중 6명은 연애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연애와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된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MZ세대들이 연애하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기성세대와 확연히 달라진 생활 방식이라는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홀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대인관계의 중요성이 극도로 줄었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MZ들은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과 한국은 대도시 생활을 선호하는 ‘극도의 도심 생활’이 장기화된 나라다. 이것이 혼자 사는 데 불편함을 비교적 적게 느끼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국내에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이유도 ‘극도의 도심 생활’에 있다는 것이 구 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는 “미국의 경우 도심보다 외곽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다.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 사는 데 불편함도 많다. 그렇다 보니 결혼하고 자녀를 갖는 경우도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극도의 도심 생활’로 1인가구 늘어

고립·은둔했던 청년들이 한데 모여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연애·결혼 기피 현상이 극단화되면 ‘고립’과 ‘은둔’을 택하는 고립·은둔 청년도 늘어난다. 고립·은둔 청년은 자신의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사회적 활동이나 대인관계도 거부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국내 청년 인구 중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5%로 파악됐다. 전체 청년인구인 1000만 명 중 54만 명이 고립·은둔 청년이란 얘기다. 5%라는 수치는 일본 정부가 발표한 일본 내 ‘히키코모리’ 비율인 2%를 상회한다. 일본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10년 늦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에서 사회문제화됐던 히키코모리 문제를 남의 일로만 웃어 넘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청년 문제 방치하면 사회 근간 흔들려


서울 은평구에서 만난 박모(27·여) 씨가 대표적이다. “입시에 실패한 뒤 은둔을 시작했다”고 말문을 연 박씨는 총 두 번의 은둔 기간을 거쳤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두 번째 은둔은 대학 생활 중 휴학을 하며 시작했는데, 1년 정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도 잘 안 풀리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지면서 그냥 은둔을 택했던 것 같다. 극도의 체력 부족으로 입시 준비는 물론 일상생활 전반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1년 동안 집 밖에 나간 날짜는 손꼽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고무적인 점은 청년들의 고립·은둔 현상이 영원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송모(29·남) 씨는 이를 극복해낸 사례다. 학창 시절 송씨는 친구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그런 괴롭힘이 그를 7년간의 ‘간헐적 은둔’으로 밀어 넣었다. 송씨는 “가장 힘들었던 건 세상은 흘러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을 느낄 때였다. 우울증도 심해졌고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되어 답답함이 컸다”고 회고했다. 송씨는 지금은 7년간의 긴 은둔의 터널에서 빠져 나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방치하면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솔지 동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무너지면 사회의 중심축이 무너지는 것이고, 이로 인한 사회문제 발생을 감당하기 어렵다. 또한 이 문제는 노년기 사회문제로 이어지기에 그 자체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청년재단(사무총장 박주희)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고립·은둔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연간 7조원가량으로 파악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고립·은둔 청년 종합 지원 대책’을 발표했고, 민간 단체들도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해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단법인 ‘씨즈’와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온라인 커뮤니티와 공동생활을 통해 고립·은둔 청년들을 집 밖으로 이끌고 있다. 공동체 활동을 거부하는 청년들의 손을 잡고 각종 활동(요리, 운동, 동아리 등)들을 통해 힘과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가정에서 ‘기다려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고래 리커버리 센터장 김옥란 씨는 “청년들은 언제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때까지 부모가 무너지지 않고 믿음과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도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vvaya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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