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데일리 투머로우]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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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김옥란 센터장

보건복지부는 작년 12월, 국내 고립·은둔 청년(‘고립 청년’은 정서적, 물리적 고립 상태가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된 청년, ‘은둔 청년’은 외출 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는 상태가 최소 6개월 이상 이어진 청년을 말한다.)이 5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한때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일본 사회의 특수 현상이 한국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이다. 국가의 허리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범정부 대책을 내놓았고 민간단체들도 이들을 치유하고 사회와 잇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가 그런 단체 중 하나다. 요리, 운동, 동아리 활동 외에 ‘공동생활’이라는 차별점을 두어 자립준비청년(부모가 아닌 위탁기관에 맡겨져 자란 청년들)과 고립·은둔 청년을 밀착 지원하는 김옥란 센터장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센터 사무실에서 마주했다.

김옥란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센터장. 지역구 청년정책 위원, 사회복지사이기도 한 그는 복지 사각지대의 실천 현장에서 고립 청년 상담, 부모교육과 상담 진행, 고립 청년 사회적 인식개선 위한 토론회, 자문 등의 활동을 벌인다. 고립 청년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 사회복지정책 석사과정 중에 있다.



반갑습니다. 청년들을 위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997년 IMF가 전환점이었어요. 외환위기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저희 식구가 잠시 살게 된 빈민촌에서 14살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부모로부터 방임되어 수도와 전기가 끊긴 집에 혼자 살고 있더군요. 그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이것저것 챙기게 됐어요. 비슷한 이유로 가족이 부재한 20대 청년 두 명과도 교류를 하게 됐고요. 시간이 흘러 서울로 이사를 가야 했을 때 모두의 동의 하에 3명을 데리고, 저와 남편과 두 자녀까지 총 7명이 서울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셨어요.

방치된 아이들의 삶이 가슴 아팠어요. 옆에서 돕는 어른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함께 5~6년을 살았고 3명 모두 일자리를 얻어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저보다 아쉬움을 더 느꼈던 남편이 이후에 노숙인과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배식을 시작했어요.(지금도 무료 배식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몇몇 청년들이 와서 배식 줄에 서더니 저희를 도와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은 아이, 가정이 깨어져 불가피하게 1인 가구가 된 아이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어요. ‘이 친구들이 세상을 살아내기 정말 외롭고 힘들겠다. 그들을 위한 일을 해보자.’ 그런 결심이 섰어요. 카페, 식당, 매점 등을 해서 청년들 일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고요.

신체  회복프로그램의 하나인 리커버리 야구단의 모습. 야구를 통해 협력과 소통을 배운다.


무엇이 부족했나요?

고립을 경험한 청년들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 가장 힘들고, 사람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어려워합니다. 단순히 일자리만 연결해 준다고 해서 온전한 회복이 되는 건 아니에요. 지속적인 사회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안정을 통한 회복이 선행될 필요가 있었어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의 치유에 초점을 둔 체계적인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고 좋은 사례를 찾기 위해 미국 시애틀로 날아갔죠.

 ‘쿠킹 런치’ 시간. 건강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성취감을 얻는다.

시애틀에서는 해결책을 발견했나요?

여러 복지기관을 돌며 꼼꼼히 살펴봤어요. 먼저 ‘Fare Start’가 눈에 띄더군요. 건물 지하에서 노숙인, 중독자, 실직자 등이 셰프 교육을 받아서 만든 음식은 노숙인 무료 배식으로 나가요. 교육을 수료하면, 바로 위에 1층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거나 지역 식당에 취업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어요. 여성 노숙인이나 미혼모를 위해 주거·정신건강·구직을 지원하는 ‘Jubilee Woman’s Center’, 저소득층 가족이 자금을 모을 때까지 1년간 무료 거주할 수 있는 ‘Compass Housing’, 모두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안정·치유·회복이라는 목표로 운영되는 ‘Recovery Café’에서 저희가 갈 방향을 찾았습니다. 중독자, 노숙인, 은둔 청년들이 밥 한 끼를 같이 먹고, 상담도 하고,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더군요. 이를 벤치마킹해서 한국에서 리커버리센터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미 청년들을 위한 일을 해오고 있었지만 그 시점이 또 다른 전환점이 된 거죠. 개인 후원과 지자체 지원사업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야외활동으로 동해 바다에서 청년캠프를 했다.

센터 설립이 그렇게 이루어졌군요. 현재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요?

먼저 전국의 보육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 청년 50여 명의 대학생활과 사회 적응을 돕고 있어요. 부모가 부재한 그들 주변에 코칭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없기 때문에 저희가 건강·정서·주거·법적 문제를 모니터링해 주고, 필요시 관련 기관에 연결해 주고 있어요. 부모의 빚을 떠안거나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어 그 해결을 돕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명의 선배들이 봉사활동처럼 함께 조언을 해주며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고립된 아픔에서 회복한 선배들이 도와주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회복한 이가 지금 힘든 친구들을 돕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아픔을 겪어 본 사람들의 선례가 청년들에게도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니까요. 고립·은둔의 경우, 연 인원 100여 명의 아이들이 센터로 나옵니다. 짧게는 1년, 길면은 10년 넘게 집에서 나오지 않던 청년들이에요. 고립과 은둔의 정도에 따라 개인 맞춤 회복로드맵을 실행하고 있어요. 신체·정서·관계·지적 건강 네 부문으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미술작품 전시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표현하면서 정서적인 회복을 돕는 ‘미미의 아뜰리에’ 활동 중 만든 작품들이다.

청년들이 잘 따라오고 있나요?

온라인 광고를 보고 프로그램에 신청했지만 실제 나오지 않거나 조금 다니다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청년들 마음속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깊은 갈구가 있습니다. ‘혼자는 힘드니까 같이 해보자’, ‘1년의 시간을 너에게 허용해 주자’, 이러한 응원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어렵게 마음을 정하고 센터에 나온 친구들은 ‘연습’을 합니다. 대인 기피가 심하면 인사하고 눈 맞추는 것을 연습해요. 그게 목표 설정입니다. 안되면 한 달 더 연장해서 스스로 극복할 때까지 합니다. 연습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이면 삶에 변화가 일어나니까요. 한 번, 두 번 좋은 습관의 추억을 쌓은 아이들은 반드시 또 옵니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본인과 코치의 생각이 일치하면 취업 교육을 연계해 줍니다.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요.


음악에 관심이 있는 청년을 중심으로 리커버리 밴드를 결성해 ‘성북 청년의 날’ 행사 무대에 섰다.


어떤 프로그램이 호응이 좋나요? 언론에서는 리커버리 야구단 이야기가 많더군요.

야구단 활동은 참여하는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넓은 야구장 하나를 빌려 함께 놀고 산책하며 운동을 해요. 햇빛을 보고, 땀을 흘리고, 유대감을 느끼고…. 1년에 한 번씩 제주도로 전지훈련도 가고요. 한라산이 보이는 멋진 야구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활동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어요. 야구를 잘하는 아이들은 리그와 연결도 해줍니다. ‘쿠킹 런치’도 반응이 커요. 먹는 게 건강하지 못하거나 1인 가구 청년들이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고, 반찬으로 챙겨가기도 해요. 또 아침마다 갖는 기지개 모임. 자신의 몸과 정서를 깨우며 자기를 알아가는 시간이에요. 그날의 주제를 글, 그림으로 표현해 보며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미술작업, 영화 만들기와 같은 예술활동도 좋아하고요.

예술프로그램인 단편영화 만들기 활동 모습. 예술활동은 주요 치유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일부 청년들은 공동공간에서 함께 거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부모와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본인의 의지가 있는 청년들 대상으로 현재 10여 명이 공동공간에 입주해 있습니다. 제가 서울로 이사 왔을 때 첫 공동생활을 한 이후에도 청년 2~3명씩 세 그룹으로 나눠 생활을 했었고 저 역시 청년 2명과 살았습니다. 흩어져 있다 보니 관리가 힘들어 지금 건물로 합치게 됐고요. 거주 기간은 1년이지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편이에요.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 수면, 식생활 등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대화하는 법,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동생활 친구들이 집에서 다니는 경우보다 좀 더 마음을 정하고 있고, 저희 역시 세밀하게 지원하고 있어요.

참여자와 운영자 모두에게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일 같아요.

IMF를 겪고 방임된 아이들을 만나 7명이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됐을 때, 누군가가 집 보증금을 무상으로 주신 적이 있어요. 도움이 필요한 곳에 사용해 달라는 말과 함께요. 그 기억이 너무나 컸습니다. 받은 은혜와 사랑을 계속 갚고 싶어요. 제 어린 시절에도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현재를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에 남는 상담사례가 있을까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사망해서 20살에 홀로 세상에 나온 한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고 합니다. 26세에 코로나 팬데믹을 만나 직업을 잃고 은둔을 시작했어요. 우울증, 자살 충동, 건강 악화에 시달렸습니다. 센터에 입소하여 회복 중, 갑상선 항진증이 발병했지만 저희가 치료를 도왔고 지금은 취업하여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 폭력, 공황장애, 자퇴 후 대학입시 실패를 겪고 8년간 은둔한 청년이 있었어요. 공동공간에 입소하여 회복 후, 1년 반 일반기업을 다니다 지금은 사회복지사를 공부하고 저희 센터의 스텝으로 함께 일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조금씩 소통하고 자립하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아침 기지개 모임에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기록한 글이다. ‘마음도 몸도건강한 나’,  ‘더불어 살아가는 나’를 바라는 청년의 마음이 묻어 있다.

‘유약함’ 혹은 ‘폭력적 성향’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일부 시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IMF 시기에 태어나 영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이 현재의 20대 청년으로 성장했어요. 실직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발생한 부모의 갈등을 지켜본 그들은 불안 속에 성장했고, 그런 아이들이 학교로 몰려 학교 폭력으로 발현됐어요. 불안을 풀어낼 장이 없다 보니 서로를 공격하게 됐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도 반복됐고요. 급격한 경제 성장과 시대 변화, 매체 발달 등으로 세상은 정서적으로 더욱 빈곤해졌습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린 아이들은 거대한 수치심을 느끼고 상실된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회에 나가 또 다른 트라우마를 겪습니다. 결국 자신을 보호할 마지막 수단으로 깊은 잠을 선택한 것입니다. 왜 은둔했는지 과정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어요. ‘은둔형 외톨이’에게 ‘잠재적 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고립·은둔 문제 해결에 큰 걸림이 돼요. 오히려 이러한 청년들은 남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꺼리는 성향입니다.

사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 보입니다.

누구나 아플 수 있고 고립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전 세대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공공의 영역과 민간의 영역을 잘 배치하여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야 해요. 국가의 정책과 지원 그리고 기업의 후원도 필요합니다. 미국 시애틀의 경우, 많은 부분에 기업의 후원을 받아 민간단체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민간단체도 청년의 개별 특성에 맞는 적합한 기관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단체 간의 협력과 소통이 필요해 보입니다.

황폐해져 가는 자녀를 지켜보는 부모의 아픔이 큽니다. 어떻게 자녀를 대해야 할까요?

은둔 청년들이 가장 먼저 관계를 끊는 대상은 부모예요. 자녀의 무기력이 장기화되면 부모도 두려움에 휩싸여 고립되기 쉬운데 저는 ‘아이의 문제는 아이가 결정할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이에게 집중할수록 자녀는 더 깊숙이 은둔해 버립니다. 그를 보는 시점에서 부모 자신을 보는 시선으로 돌려야 해요. 적당한 정서적 분리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아이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스스로의 힘을 길러야 해요. 자기를 가꾸고 꿈을 찾고요. 은둔 청년들이 밖으로 나오는 포인트,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낼 때는 분명히 있어요. 그때 부모가 초조해하지 않고 자녀를 딱 잡아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굉장히 넓게 포용할 준비를 해둘 필요가 있어요.

청년과 세상을 이어주는 분으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바닷속 ‘푸른 고래’는 몇 분 간격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합니다. 어리거나 아픈 고래가 물 위에 떠오르지 못하면 어미나 동료 고래가 수면 위로 올려서 호흡을 도와요. 그 어미 고래의 마음이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청년들의 소망은 소박해요.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요. 대화하는 게 편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소통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뱉고 싶은 ‘호흡’입니다. 자립은 그다음의 문제이죠. 우리 사회가 청년들이 진짜 원하는 걸 알고 서로의 호흡을 돕기를 바랍니다. 혼자서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을 함께하는 삶으로 메울 수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그 자체로 빛나요. 한 사람 한 사람 그 자체로 명품이라는 것도 꼭 잊지 말았으면 해요.

김옥란 센터장은 20년간 고립된 청년과 함께했다. 그들과 산 공동공간은 삶의 터전이었다. 공감과 환대라는 큰 품을 가진 이 ‘어른’은 인생의 화양연화 시기를 살지만 마음은 무너져버린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회를 향해 어렵게 내딛는 ‘한 걸음’을 지지하며. 올해 리커버리센터는 제주도 1년 살이를 계획 중이다. 새로운 도전 앞에 많은 난관이 예상되지만 김옥란 센터장의 얼굴은 희망찼다. 아픈 고래의 ‘숨’을 도우려는 그의 행보는 계속될 것 같다.

단체의 팸플릿에 이런 소감 글이 적혀 있었다. “이번 동해 여행을 생각하며 다시 위로 떠오를 수 있음을,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 반드시 나를 구해주러 올 것임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구명조끼를 입겠다는 의지가 먼저 필요하다는 것… 이번 여행을 통해서 구명조끼를 다시 한번 강하게 조였다.”

청년이 깨달은 ‘의지’는 ‘선택’이었다. 변화에의 소망, 나를 이끄는 손길을 거절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정. 청년의 ‘용기’와 어른의 ‘사랑’이 이어질 때, 우리 사회의 깊은 목마름이 해갈되지 않을까. 희망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출처 : 데일리투머로우(http://www.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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