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BBC 코리아] 왜 이 부모들은 '감옥행'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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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째 은둔 상태에 접어든 24살 외아들을 둔 50대 어머니 진영해(가명) 씨는 독방에서 아들의 '마음의 감옥'을 이해하게 됐다

  • 김효정
  • 기자,BBC 코리아
  • 2024년 6월 28일


1.5평이 되지 않는 사각형 공간. 새하얀 벽엔 거울을 비롯해 그 어느 것도 걸려있지 않다. 휴대폰이나 랩톱을 비롯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은 소지 불가능하다. 방문 아랫부분에 뚫린 배식구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공간이다.

최근 자녀들을 위해 스스로 독방에 들어간 부모들이 있다.

파란 수의를 입고 2박 3일간의 '독방체험'을 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30대 히키코모리,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자녀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난 4월부터 고립·은둔 청년 부모들을 위해 13주간 진행 중인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청년재단과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가족 이음' 프로그램을 통해 자녀와의 소통 기술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 등을 배우고 있다.

지난달에는 강원 홍천군에서 2박 3일 동안 진행된 ‘치유캠프’에 참여했다. 이곳에는 감옥 독방을 재현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독방체험을 통해 '은둔형' 자녀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고립의 이유도 모른다


3년째 은둔 상태에 접어든 24살 외아들을 둔 50대 어머니 진영해(가명) 씨는 독방에서 아들의 '마음의 감옥'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렇게 됐을까 하고 가슴이 아파서 못 꺼냈던 것도 생각하게 되면서 정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진 씨의 자녀는 영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특해서 부모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몸이 왜소했던 아이는 학교 교우관계를 힘들어했다. 섭식장애까지 찾아와 학교를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는 명문대 진학을 꿈꿨지만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학으로 진학했다.

한 학기 정도는 학교에 잘 다니는 듯 보였지만, 어느 날 아이는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방에 틀어박혀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않는 아들을 보며 애가 타들어갔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했지만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아들의 마음 자체는 알 길이 없었다.

"이곳을 먼저 다녀간 고립 청년들의 메모가 여기 있었어요. 제 아이가 말을 안 하다 보니까 어떤 마음인지 몰랐는데 그걸 읽으면서 느끼게 됐어요, '아,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침묵'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있었구나' 하고요"

여전히 아이의 마음속 빗장은 잠겨있지만, 박 씨는 부모교육 속 역할극을 통해 조금은 아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한실(가명) 씨는 7년째 외부와 소통을 끊은 26세 아들 때문에 '부모교육'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몇 차례 가출한 전력이 있는 아들은 이제 대부분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고립·은둔의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일 것이라 추정한다. 말을 걸어도 아들은 제대로 답해주지 않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박 씨는 아들을 꺼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겨우 돌아오는 한마디는 "알아서 한다고!"였다.

상담과 병원 방문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 했지만, 아들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약은 타놓았지만 아들은 먹지 않고 게임에만 빠져들었다.

박 씨는 달라진 아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 55kg 이렇게밖에 안 나갔는데, 한 20kg가 갑자기 불더라고요. 배가 갑자기 나오고 양치도 안 하고 그냥 위생 관리 안 되고 그러죠. 깔끔하고 정리정돈도 잘하던 아이였는데..."

아들의 은둔으로 인해 남편과 다른 자녀도 우울과 좌절을 겪고 있다고 박 씨는 전했다.

"남편은 아들의 상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요.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 넌 왜 그 모양이야?'라고 말하며 저와도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딸도 오빠를 보며 왜 자기 일을 하지 않고 저렇게 사느냐며 많이 힘들어해요."

아직 아들의 마음은 빗장 뒤에 잠겨 있지만, 박 씨는 부모교육의 일부인 역할극을 하면서 아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했다.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아이의 삶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역할극을 하면서 아이가 '그게 싫어'라고 말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그 말을 못 해서 아이가 병이 난 것 같아요."


고립은둔 청년들 중에는 주거지에 갇혀 바깥 외출을 꺼리고 쓰레기를 모아두고 사는 경우도 있다. 몸과 마음의 짐이 쌓여서다



'손잡이가 없는 문'

보건복지부가 전국 1만5000명의 청년(19세~34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 이상이 고립·은둔 상황에 있다. 전체 청년 인구로 환산하면 약 54만 명이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셈이다.

이들이 고립·은둔에 빠진 주된 이유는 취업 실패가 24.1%로 가장 컸고, 대인관계 문제(23.5%), 가족 문제(12.4%), 건강 문제(12.4%)가 뒤를 이었다.

경희대 사회학과 정고운 교수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학업, 취업, 결혼 등 특정 시기에 특정 성취를 이루는 표준적인 삶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이른바 정답사회인 거죠. 경제적 저성장과 저고용 시대에 이 표준 궤적에서 벗어나면 불안감은 더욱 커집니다."

또한 자녀의 성취가 부모의 성취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가족 전체를 은둔의 늪에 빠지게 한다. 부모들은 양육 실패라 여기고 죄책감을 느끼며 함께 침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생겨도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분위기가 가족 내에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 교수는 "한국에서 부모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자녀와 대화하기 보단, 실제적인 행동이나 역할을 통해 그 마음을 드러낸다"며 "열심히 일하며 자녀의 등록금을 지원하는 부모들이 대표적인 예로, 이는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의 김옥란 센터장은 고립·은둔 자녀가 있는 집의 상황을 '손잡이가 없는 문'이라고 비유했다.

"은둔형 외톨이인 자녀는 혼자 나올 용기도 없고, 부모는 밖에서 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양쪽 다 손잡이가 없어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인 거죠."

이를 '가정 문제'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도 이들을 더 위축되게 만든다. 이 때문에 부모들도 자신의 인간관계를 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진영해 씨 역시 이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

"제 친구들도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들은 학교 진학, 군 입대, 취업 등 발달 단계에 따라 잘 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 아이는 그렇지 않으니 위축될 수밖에요. 꽃다운 20대인데, 우리 애는 왜 아름다운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만 누워 있을까요..."

비난을 받을까봐 가까운 가족에게도 말을 못 꺼내는 부모도 있다. 여러 은둔 청년과 부모를 만나본 김 센터장은 이런 문제를 많이 느꼈다고 말한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숨기려고 해요.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부모님들도 같이 고립됩니다. 명절에 친척 집에 가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아요."

김 센터장은 고립·은둔 문제가 장기화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은둔이 다른 가족에게도 도미노처럼 퍼져 나가기에 '골든 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은둔 청년의 연령 범위가 넓어지는 점은 우려스럽다.

"현장에서 느끼기론, 3년 전과 비교해본다면 평균 나이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도 계속 존재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 나이가 들어가는 청장년층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례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1990년대부터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일본은 또 다른 문제를 겪고 있다. 청년이었던 히키코모리가 중장년이 되어도 고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이 된 80대 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연금 수입으로 겨우 부양하다 빈곤에 빠지고, 노인 우울증에 걸리는 사례가 많다. 은둔이 장기화하면서 부모와 자녀의 생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청년에서 중장년이 된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연금 수입으로 겨우 부양하다 빈곤에 빠지고, 노인 우울증에 걸리는 부모들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날


인터뷰에서 만난 부모들은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올해부터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원스탑 창구'를 설치하고 청년과 가족들을 돕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했다.

진 씨는 "정책이 발표되면서 여러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지역마다 산발적"이라며 "정보를 관리하는 통합된 컨트롤 타워가 있어서, 힘들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지원 방법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 중퇴 후 14년째 은둔 생활 중인 자녀를 둔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장은 직접 자조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정보를 공유할 '공적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녀가 자립하거나 독립할 수 없다면 언제까지 지원을 지속해야 하는지 두려움이 크다"며 여러 부모들이 가족 심리 지원 상담과 더불어 경제적 부담을 덜어줄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둔 청년 부모들은) 따뜻한 위로와 공감, 스스로를 돌보면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은둔 고립 청년들의 부모들은 자녀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자녀가 문 밖을 나서 세상 밖으로 나가는 날,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진 씨는 "고생 많았다. 힘들었지. 엄마가 뒤에서 지켜봐 줄게"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박한실 씨 역시 눈물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세상은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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