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국민일보] ‘옆집 애도 그렇대’ 히키코모리 국내에도 13만명[이슈&탐사] (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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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애도 그렇대’ 히키코모리 국내에도 13만명[이슈&탐사]

[방에 나를 가뒀다, 은둔 청년 보고서] 본보·G’L연구소 분석, 청년재단도 최근 국내 첫 실태조사


지난 16일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재활을 돕는 서울 성북구의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 한 청년이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윤성호 기자


지난해 6개월 이상 집밖에 나오지 않고 고립을 택한 ‘은둔 청년’이 13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2019년 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 데이터를 G’L학교밖청소년연구소(G’L연구소)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준 국내 19~39세 은둔형 외톨이가 13만1610명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데이터는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실의 도움으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입수했다.


청소년정책연구원은 해마다 19~39세를 대상으로 ‘외출’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취재팀과 G’L연구소는 해당 조사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간주될 수 있는 응답을 한 사람의 비율을 추출했다. 지난해 청소년사회경제실태조사 응답자 2869명 가운데 0.9%(26명)가 이에 해당하는 응답을 했다. 이 비율을 19~39세 전체 인구에 적용했더니 13만1610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장애나 임신·출산으로 인해 집에 머무는 경우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이 분석 방법은 일본의 히키코모리 규모 추정 방법과 동일하다. 청소년연구원의 실태조사 문항은 일본 내각부(국무총리실)의 히키코모리 실태조사 질문과 같다.


국내 은둔 청년 13만1000여명은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규모다. 일본은 2015년 실태조사에서 15~39세 히키코모리를 약 54만1000명으로 파악했다.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윤철경 G’L연구소장은 “한국은 대상 연령이 19~39세라서 일본과 비교하면 13만명에 플러스 알파가 있다고 봐야 한다. 인구 대비 발생률 0.9%는 일본(1.57%)과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함께 사는 가족 1~2명을 포함할 경우 20만~30만명이 은둔형 외톨이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별로는 남성(1.0%)이 여성(0.81%)보다 은둔 발생률이 높았다. 인구수로 환산하면 남성 7만4274명, 여성 5만5507명이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연령별로는 19~29세가 8만8670명, 30~39세가 4만4466명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 대상을 40세 이상으로 확대하면 은둔형 외톨이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40~64세, 즉 중년 히키코모리 인구가 약 61만300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중년 히키코모리가 증가하면서 일본에서는 ‘8050’ 갈등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80대 부모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일컫는 말로 중년이 되도록 은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노부모의 생활까지 망가지고 있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이미 ‘은둔하는 중년’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 겸 파이심리상담센터 자문위원은 “곧 ‘노년 은둔’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20, 30대부터 은둔생활을 했던 이들이 나이가 들고 있다”고 말했다.


대인 관계서 어려움 겪다 은둔


청년들의 은둔은 또래 친구 관계나 학교 폭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조사됐다. 취재팀이 단독으로 입수한 청년재단의 ‘고립청년(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은둔생활을 시작하는 계기를 묻는 질문에 ‘집단 따돌림’ ‘고등학교 자퇴’ ‘학교 부적응’ ‘친구와 어울리지 못함’ 등 ‘대인관계 및 학교 부적응’을 겪은 경우가 절반 이상(51%)이었다.

청년재단 보고서는 은둔형 외톨이 47명과 부모 34명을 대상으로 올해 초 일대일 상담을 거쳐 작성됐다. 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사실상 국내 첫 보고서다.


은둔이 시작된 시기는 10대나 20대 초반이 대부분이었다. 보고서는 “학창시절 또는 군 제대 후 등 관계 가변성이 높은 시기에 (은둔 시작이) 집중된다. 학교 및 사회 적응기에 잘 대처하지 못한 경우 고립 상태로 진입될 위험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의 지지와 관련 기관의 도움이 없으면 피해자가 사회적 관계를 모두 단절해버리고 은둔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둔 청년들은 “은둔 직전 문제 해결을 위해 애를 썼지만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털어놨다.


‘은둔 청년’은 가정의 화목한 정도나 경제력과도 크게 연관이 없었다. 부모 결혼 상태의 경우 결혼 및 동거가 61.8%로 가장 높았고 이혼 20.6%, 사별 8.8%, 별거 5.6% 순이었다. ‘가정 경제 상황’은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61.8%로 가장 높았고 ‘하’ 26.5%, ‘상’ 11.8%였다.



은둔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도 정서적 고통을 안고 있었다. 보고서는 “부모들 역시 청년들과 유사하게 우울이나 불안을 중심으로 한 정서적 고통을 가장 많이 겪고 있다”고 언급했다.


니트족과 다르다


국내에서 은둔형 외톨이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 탓에 제대로 된 실태조사나 대책 마련이 전무했다. 은둔형 외톨이의 범주에 관한 정확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은둔의 기준을 보통 6개월로 보지만 일부에서는 3개월을 기준으로 본다. 또 ‘은둔형 외톨이’라는 용어 자체가 부정적인 인식을 준다며 ‘고립 청년’이라는 말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있다.


경제활동을 포기한 이른바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과 구분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와 단체는 니트족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니트족은 15~34세 미혼 상태로 학교에 다니지 않으면서 가사일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윤철경 소장은 “은둔형 외톨이는 니트족 중에서도 소극적이며 사회적으로 좌절된 비취업희망형 인구집단”이라며 “니트족과 은둔형 외톨이 대책을 구분하지 않을 경우 접근이 어려운 은둔형 외톨이 13만명은 또 주변부로 밀려나고 소외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는 정신질환 현상과 구분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혜원 교수는 “일본 학계에서는 대부분 병이 아니라고 본다”며 “신경학적 원인인 경우 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약물 효과가 없고 심리적인 원인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은둔 청년 지원 시민단체 첫 발족


국내에서도 은둔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국은둔형외톨이지원연대는 27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단체를 발족시켰다고 밝혔다. 은둔형 외톨이를 위한 첫 시민단체다. 연대에는 그동안 은둔형 외톨이를 대상으로 직·간접적 지원과 상담, 교육 연구사업을 해온 16개 단체와 개인이 참여했다.


연대는 “일본은 히키코모리를 위한 지원제도가 마련돼 있어 전문 상담과 서포터 양성 등 다양한 사업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실태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연대는 또 “사회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당사자들이)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우리 연대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이 실효성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 마련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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