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국민일보] [방에 나를 가뒀다, 은둔 청년 보고서] ③ 방 안의 삶 (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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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경쟁 피해 방으로 숨은 청년…그곳에서도 행복 못찾았다 [이슈&탐사]

[방에 나를 가뒀다, 은둔 청년 보고서] ③ 방 안의 삶


청년이 고통받는 시대, 더욱 한계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스스로를 방에 가둔 청년들입니다. 가족이 쉬쉬하지만 ‘은둔 청년’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습니다. 지난해 기준 약 13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사회 문제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 고립되는 청년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은둔 청년 사례 18건을 찾아 당사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방 안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6회 시리즈로 전합니다. 시리즈 3회는 스스로 단절을 택했지만 세상을 그리워하는 청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은둔 생활 경험이 있는 한 청년이 지난달 16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K2인터내셔널코리아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K2는 은둔형 외톨이의 재활을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윤성호 기자


지난여름 김모(61·여)씨는 서울의 한 낡은 상가 3층에 있는 아들의 고시텔 방을 보고 ‘아휴 세상에…’ 하며 연신 탄식을 했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남은 플라스틱 박스와 일회용 숟가락, 젓가락이 쌓여 있었다. 바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쓰레기매립지 같은 방에서 아들은 이불을 덮지 않고 자고 있었다. 수염을 깎지 않은 아들에게서 오랫동안 씻지 않은 냄새가 났다.


아들 진수(가명·28)씨는 이곳에서 5년째 혼자 살고 있다. 해당 고시텔을 관리, 운영하는 A씨는 진수씨가 외출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하루나 이틀에 한 번 정도 배달된 음식이 그의 방문 앞에 놓인다고 한다. A씨는 “종일 방에 불을 켜 놓고 밤낮이 바뀐 채로 산다”고 전했다.


진수씨는 근처 직업전문학교에 적을 두고 있지만 2016년 이후 등교하지 않고 있다. 어머니 김씨는 아들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은둔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를 관두고 바로 취업하기 위해 산업 분야 기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어요. 시험공부 하면서 1년 정도 허비하나 싶더니 저렇게 됐네요.” 진수씨는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실기에서 두 차례 떨어졌다고 한다.


은둔의 조짐은 어릴 적부터 있었다. 진수씨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판정을 받아 중학교 때부터 학교 폭력과 왕따에 시달렸다. 친구가 없었고 자신의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출퇴근이 가능했던 군대에서는 자주 지각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시텔비 월 43만원을 내주고 있다. 이 돈도 겨우 마련하는 형편이라 생활비는 따로 부치지 못한다. 진수씨는 어머니에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만날 방에만 있는데 무슨 아르바이트예요.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허 참.” 진수씨가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무슨 돈으로 음식을 배달시키는지는 어머니도, A씨도 몰랐다.


어머니는 지난여름 방문 때 진수씨를 어렵게 밖으로 끌고 나와 커피전문점에 갔다. 아들은 자꾸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카페 아르바이트 직원이 내 꼬락서니를 보고 오지 말라고 욕했을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남들 시선을 의식하나 봐요.” 아들이 안쓰럽고 걱정된 어머니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 단체에 가보자고 했지만 진수씨는 ‘나는 멀쩡한데 왜 자꾸 그러느냐’고 화를 냈다. 김씨는 “바깥으로 끌어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말했다.


폭력과 경쟁을 피해 방으로 숨은 청년들은 그곳에서 행복을 찾았을까. 취재팀이 만나거나 부모를 통해 사연을 들은 은둔 청년 대부분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름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이것저것 계획을 세워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외출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졌다. 청년들은 조금씩 시들어갔다.


지루한 은둔의 밤


고교 1학년 때 자퇴하고 9년간 집에서 은둔한 정선우(가명·26)씨는 그동안 외출한 날을 거의 떠올리지 못했다. 두 달에 한 번쯤 함께 살지 않는 아빠를 보러 간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집에 있을 때는 TV를 보거나 컴퓨터,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무기력했던 기억뿐이에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바깥에 나가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은둔 청년들은 주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 방 안에서 시간을 때우는데 그만한 방법이 없다. 고등학교를 두 달만 다니고 방으로 들어갔던 김기윤(가명·25)씨는 “많으면 하루 종일, 적어도 5~6시간씩 온라인 게임을 했다. 딱히 할 게 없고 심심해서 게임만 하고 지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은둔한 안일석(가명·19)씨는 유튜브에 빠져 살았다. “주로 정치 관련 유튜브를 봤습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면서 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올해 초 은둔 청년 47명을 심층 면접한 청년재단의 ‘고립 청년(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보고서는 “은둔형 외톨이의 게임 및 스마트폰 중독 고위험군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또 “실제 생활에서 이뤄져야 할 관계적 욕구나 동기가 가상세계로 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른 채 방에서 살다 보면 낮과 밤은 뒤바뀐다. 다른 사람들이 학교에 가거나 출근하는 시간에 잠들어 해가 저물면 일어난다. 가족의 눈치를 덜 보기에도 그렇게 하는 게 편하다. 2016년 하반기부터 은둔한 박기훈(가명·28)씨는 지난 4년 동안 항상 새벽 늦게 잠을 자고 오후에 깼다. 기훈씨는 “방 밖이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일어났어요. 식사는 어머니가 일 나가기 전에 차려준 반찬들을 혼자 꺼내 먹으며 해결했고요.” 취재팀이 취재한 은둔 청년 18명 가운데 14명이 밤낮이 뒤바뀐 채 생활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규칙한 생활 패턴과 활동 부족은 체중을 고무줄처럼 늘리거나 줄였다. 선우씨는 은둔할 때 30㎏ 이상 살이 쪘다. “라면처럼 자극적인 음식만 주로 먹다 보니 살이 급격하게 쪘어요.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이 있긴 했는데 세 끼를 다 챙겨 먹기가 질렸어요.”


반대로 식욕을 잃은 채 최소한의 음식물만 섭취하며 연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성태(가명·24)씨는 2018년 말부터 1년 반 동안 반지하방에 혼자 있으면서 2~3일에 하나씩 생라면을 먹었다. “가끔 입이 심심하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과일이나 통조림을 주문해 먹었고요. 한 번은 새벽에 잠깐 바람 쐬러 나갔는데, 체력이 안 좋아서인지 너무 피곤하더라고요.” 지난 6월 고립 청년을 돕는 ‘리커버리센터’의 공동생활에 참여한 그는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 예전 체형으로 돌아갔다.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8년간 은둔한 김도연(가명·21)씨는 방에만 있던 시간이 너무 아깝고 후회된다고 했다. “아침에 엄마랑 밥 먹고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다시 밥 먹고 새벽까지 게임을 했어요. 검정고시를 보거나 자기계발을 할 계획도 세웠는데 지키지 못했어요. 하루가 되게 빨리 지나갔는데, 시간을 낭비했다는 마음에 괴롭더라고요.”


괴로움을 자해로 풀다


은둔 청년들은 방 안에 있는 동안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했다. 방에만 있는 현실이 불만스러우면서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살을 돌렸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물리적으로 자신을 괴롭혔다. 은둔 청년 상당수는 자해를 했고 일부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도연씨는 은둔 1년 차이던 2013년부터 자해를 했다. “방에 있는 동안 자괴감이 들면서 나쁜 생각을 자주 했어요. 스트레스가 많으면 자해를 하고, 두세 달 참다가 또 했습니다.” 그의 손목에는 치료를 위해 꿰맨 흔적이 있다. 자해를 해도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상처가 더 크게 나길 원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2016년에는 극단적 선택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선우씨도 고교를 자퇴하고 은둔하는 동안 자해에 중독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방 안에만 있으면서 우울증과 죄책감이 심해졌다. “매일 스스로에게 모진 말을 하며 상처를 줬어요. 하루라도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하루는 딸의 은둔을 답답해하던 어머니가 ‘왜 너는 엄마한테 말하지도 않고 학교에서 맞고만 앉았었느냐. 바보 같은 게 학교 폭력이나 당하고’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화가 난 선우씨는 자신의 신체를 괴롭혀 분을 풀었다.


안일석씨는 고독을 잊으려고 자신에게 고통을 줬다. 일석씨는 “누구도 나를 지지해주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이유 모를 답답함이 있었어요. 육체적 고통이 심리적 고통보다 덜할까 싶어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1분에 세 번씩 들이받았어요.” 박기훈씨도 은둔하는 동안 종종 신체에 압박을 가했다. “매일 숨 쉬고 살아 있는 것조차 너무 괴로웠어요. 몸이 힘든 동안에는 우울한 생각도 멈추더라고요.”


청년재단의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보고서는 “청년들과 상담한 결과 자해 경험이 많았다. 이는 자살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며 “정책·시스템 차원의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8년간 은둔 경험이 있는 김도연(가명·아래)씨가 지난달 5일 서울 성북구 리커버리센터에서 국민일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왕따 문제로 중학교를 자퇴한 김씨는 은둔 기간 대인기피증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최현규 기자



깊어지는 대인기피증


대인기피증은 은둔 청년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증상이다. 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들은 사람을 점점 더 무서워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방 안에만 있는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취재팀이 만난 청년들은 사람을 계속 피하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나 욕구 표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고백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김도연씨는 은둔하는 동안 외출을 극도로 꺼렸다. 이유를 묻자 “부끄러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옛 동창들이 학교도 안 가고 집에만 있는 저를 길에서 알아볼까 부끄러웠어요.” 낯선 타인이 보내는 시선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동차 앞을 지나가면 안에 탄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바깥을 쳐다보잖아요. 밖에서 걸을 때 누군가 저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싫었어요. 누군가가 내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


중학생 때 시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은둔을 시작하게 된 문세훈(가명·20)씨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사람 만나는 게 무섭고 자신이 없었어요. 가끔 외출이라도 할 때면 눈이 피하고 말도 제대로 못 했죠.” 열등감도 대인기피증을 악화시켰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다들 잘 사는데 저만 정체된 느낌이라 비교가 되고 힘들었어요.”


이성태씨는 지난 4월 은둔한 지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방에서 나와 상담을 받으러 갔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상담센터로 가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버스에 탔을 때 모든 사람이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머리는 기름지고 꾸미지 않고 하니까 ‘쟤가 뭐 하는 놈일까’ 괜히 쳐다보는 것 같더라고요.” 그는 버스에 탄 1시간 반 동안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서울 성북구 K2인터내셔널코리아(K2)에 입소한 한 은둔 청년이 지난달 16일 자신의 방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15년 넘게 은둔했던 이 청년은 이곳에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일석씨는 은둔 6개월 만에 방에서 나와 외출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길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못생겨서 쳐다보나? 살쪄서 그런가? 나를 보고 웃는 것만 같았어요.”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은둔 청년들이 자신이 낙오자, 실패자가 됐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청년들은 방에 있으면서 생긴 몇 개월, 몇 년의 격차를 굉장히 크게 인식한다. ‘내 인생은 망했다. 사회에 나가면 나를 이상하고 한심하게 볼 거다’라는 두려움이 이들을 밖으로 더 못 나오게 한다”고 말했다.


숨었지만 소통은 하고 싶어


박기훈씨는 은둔 3년 차였던 2018년 겨울의 어느 추운 날을 잊지 못한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모이는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 글을 쓰며 활동하던 기훈씨는 그날 마음이 맞은 다른 회원과 처음으로 만났다. “만나서 밥 먹고 서로 조금씩 이야기하는데 진짜 아픈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어요. 제가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다들 힘든 상황이었죠.” 기훈씨를 포함한 은둔 청년 세 명은 평범한 20대 친구들처럼 하루를 함께했다. 종일 고기랑 술을 먹고, 노래방도 갔다. 헤어지기 아쉬워 여관에서 함께 잠을 잤다. 이후 국내 여행도 함께 다녔지만 사소한 오해가 쌓이면서 관계가 끊겼다.


은둔 청년들은 방 안에 고립돼 있지만 소통 욕구마저 내려놓지는 않는다. 상당수는 비슷한 성향이나 문제를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 등을 찾는다. 네이버 카페 ‘더 호퍼’ ‘죽사하’(죽고 싶은 사람들의 하소연) 등이 대표적이다. 즐기는 게임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곳에는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익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8년간 은둔한 송근재(가명·24)씨도 카페에 글을 올리며 외로움을 달랬다. 과거 학교 폭력을 당했을 때 느낀 괴로움과 은둔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카페 말고는 소통할 수 있는 데가 없었어요. 댓글이 달리면 나를 이해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선우씨는 게임 속에서 만난 친구들이 은둔 생활에 위로가 됐다. 따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고민을 나눌 만큼 친해졌다. “가족과 싸우고 나서 원망스러운 마음을 토로하고 은둔형 외톨이 생활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어요.”


김도연씨는 2013년 검정고시 준비 카페에서 동갑내기 ‘베프’(베스트프렌드)를 만났다. 도연씨와 비슷하게 중학교를 자퇴한 뒤 방 안에서 은둔하고 있던 친구였다. 도연씨는 그와 시시콜콜한 일상을 모두 공유했다. “오늘은 뭘 먹었는지,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군지 이야기했어요. 서로 노래나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했죠. 마음이 잘 맞았어요.” 베프는 2년 전 도연씨보다 먼저 은둔 생활에서 벗어났다. 도연씨에게 집 밖에 나오라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나자고 했다. “그 친구가 저를 많이 이끌어줬죠. 위안이 많이 됐어요.”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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