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비뉴스] [은둔 청년 보고서] ③ 은둔의 마음 (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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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과 우울의 무한 굴레

[은둔 청년 보고서] ③ 은둔의 마음


▲ 은둔 청년 25명의 심리 상태. 우울증, 무기력감, 대인관계 어려움, 수치심은 은둔 청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심리 상태다. ⓒ 현경아


강세주(32·여·가명) 씨는 12년 전인 스무 살 때 1년 동안 은둔했다.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다’고 생각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세주 씨는 깊은 잠에 빠졌다. 이틀 내내 자기도 했다. 자다 깨고, 깼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정신이 드는 순간에는 자책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제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세주 씨는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가끔은 희망을 품었다. 잠들기 전 되뇌었다. ‘내일은 나가야지, 나가야지.’

잠에서 깨면 전날 품었던 희망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좌절감과 열등감이 찾아왔다. 머릿속에 그린 친구들 모습이 세주 씨를 괴롭혔다. 끊임없이 자신과 친구들을 비교했다. “그 사이 ‘다른 친구들은 얼마나 더 괜찮아졌을까’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잠들었다 깨고, 희망을 찾다 잃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세주 씨만 제자리였다. 그렇다고 믿었다.


▲ 은둔 청년은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리며 심연에 빠진다. 어찌 보면 우울증과 닮았다. 다만 우울증을 앓는 이와 달리 은둔 청년은 심연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들은 끝까지 고군분투한다. ⓒ 김혜리


사람이 두려운 은둔 청년들

취재팀은 은둔형 외톨이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했다. 소개글은 정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다. 이 가운데는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한 글도 있다. 서술형으로 적은 답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대인관계가 어렵다는 답(66.4%)이 가장 많았고 우울(49.6%), 무기력(12.7%), 불안(11.6%·이상 복수응답) 등 자기 감정 상태의 어려움을 토로한 경우가 뒤를 이었다.


▲ 은둔형 외톨이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했다. 소개글은 정회원 자격을 얻기 위한 과정으로, 필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중 은둔 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관한 답을 4개로 간추렸다. ⓒ 현경아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한 내용을 다시 세분해보면, 단순히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렵다’고 표현한 경우는 28.8%였지만, ‘사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거나 ‘사회공포증을 느낀다’ 등 사회 전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경우가 71.2%였다. ‘사회공포증’은 다른 사람 앞에 서면 불안을 느껴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고, 이로 인해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지는 정신질환이다. 응답자가 실제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은둔 청년의 대부분이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경수(26·남·가명) 씨도 사회공포증을 경험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구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 동안 은둔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한 후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했다. 학교를 갈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급식실에 갈 엄두가 안 나서 점심도 먹지 않았다. 경수 씨는 “사람들이 육식동물 같았다”고 표현했다. 

한편, 은둔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1살이 되던 해에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인기피증을 이기지 못하고 중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인기피증은 심해졌다. 버스를 타는 것도 무서웠다. 경수 씨에게 사람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경수 씨는 은둔 청년 중에서도 학교 폭력으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는 경우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해도 사회공포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랜 기간 대인관계를 맺지 않으면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임수지(25·여·가명) 씨는 2차례에 걸쳐 4년간 은둔 생활을 했다. 첫 은둔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1년간 지속됐다. 경상남도 창원시 고향집에서 잠만 잤다. 기절하듯 잠자길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2살에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 캐릭터 일러스트 외주를 받아 생활비를 스스로 벌었다. 그러나 첫 은둔 때 얻은 대인기피증이 수지 씨를 괴롭혔다. 친구를 사귀어도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모든 관계를 끊었다. 1년 만에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갔다. 두 번째 은둔이었고, 그의 나이 23살이었다. 이후 2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떨칠 수 없는 우울과 무기력

은둔형 외톨이 인터넷 카페에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한 통계에서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응답자는 49.6%(234명)로 절반 가까이 됐다. 미국 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의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5)에 따르면 우울증 진단의 기준이 되는 증상은 '우울한 기분'과 ‘흥미·즐거움의 상실'이다. 우울증 환자는 피로, 불안, 무기력, 과도한 자책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은둔 청년들도 이와 같은 감정을 겪는 경우가 많다.


▲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중 17명(68%)은 우울증을, 15명(60%)은 무기력감을 호소했다. 22명(88%)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 현경아


취재팀이 만난 25명의 은둔 청년 중에서도 17명(68%)이 우울증을 겪었다고 답했다. 정신질환으로 약물 치료를 받은 사람은 9명, 병동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5명이었다. 상담 치료를 받은 사람도 10명이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유종민(30·남·가명) 씨는 27살이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은둔했다. 대학교 4학년이던 2016년부터 은둔 기미를 보였다. 집 밖을 나와 학교로 가는 일이 힘들어져 수업도 나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멍한 상태로 보냈다. 이런 모습이 싫어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그 모습도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였다.

학기가 끝나갈 즈음, 우울이 무서워졌다. 이대로는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았다. 기말고사도 보지 않고 2016년 6월 도망치듯 입대했다. 전역 후에는 9급 공무원 준비도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려고 시도했다. 우울은 가시지 않았다. 2019년 4월부터 대학 근처 자취방 안에서만 지냈다. 상태가 심할 때는 종일 누워 있었다. 방에는 쓰레기가 쌓여 갔다. 종민 씨는 2020년 11월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자진해서 입원했다. 

정신병원에서 일기를 썼다. ‘무의미. 무가치. 너무 무섭다.’ ‘8년째 지속되는 무의미와 무가치의 것들을 직시할 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다. 뭔가 정신을 팔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다.’


▲ 유종민(30·남·가명) 씨가 정신병원에서 쓴 일기 일부. 종민 씨는 은둔 생활과 함께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원에서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삶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해서 두렵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유종민


우울증은 무기력한 감정을 동반한다. 무기력은 회의감, 피로감, 의욕 저하 등으로 나타난다. 무기력한 사람은 ‘나는 뭘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잃는다.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보인다. 취재팀이 만난 25명의 은둔 청년들 중 15명(60%)이 무기력감을 겪었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은둔한 임수지(25·여·가명) 씨는 무기력한 상태를 ‘막연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나만 은둔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벗어난다고 해서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두려웠다. 수지 씨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은둔하느라 쌓아 놓은 이력도 없었다. 20대 중반이 되어 가는데 취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마음이 조급했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은둔의 형태를 한 수치심

은둔에 들어가면 자신감과 자기 존중감은 사라진다. 은둔 청년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에 쉽게 빠진다. 스스로를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중 6명은 은둔 중에 ‘자기혐오가 심했다’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가 모인 인터넷 카페에 4년 6개월간 올라온 471건의 소개글 중 ‘스스로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라는 문항에 대한 답변을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겠다’가 44명으로 가장 많았고, ‘없는’ 20명, ‘겁쟁이 또는 겁’ 16명, ‘히키코모리’ 13명, ‘바보’ 12명, ‘자신감 없는’ 11명 순이었다.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기혐오에 빠져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기혐오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으로도 나타난다. 강세주(31·여·가명) 씨가 1년간 은둔하면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은둔을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언젠가 친구가 집까지 찾아온 적이 있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이 굳었다.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세주 씨는 급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을 했다. 친구가 불러도 공부해야 한다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세주 씨는 “벌거벗은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은둔 청년은 자신의 은둔 생활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수치심을 강화한다. 박대령 이아당심리상담소장은 “(은둔 청년은) 심리적으로 수치심, 열등감, 무기력감을 가장 많이 느낀다”며 “수치심이라는 건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기 때문에 수치심이 커질수록 더 숨는다”고 설명했다.


은둔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음

은둔 청년이 그저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취재팀이 만난 25명의 은둔 청년 중 태연하거나 마음 편한 사람은 없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우울증, 무기력감,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나은 상황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러한 심리는 은둔 탈출 의지로 나타났다. 취재팀이 만난 25명 중 16명은 은둔 기간 중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었다. 은둔 중에도 구직 의사가 있었던 사람은 11명이었다. 취업성공패키지 등 정부 지원 체계를 통해 구직활동을 한 사람도 4명이었다.

하지만 탈출에 실패하면, 더 큰 좌절을 겪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은둔이 길어진다. 이는 긴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취재팀이 만난 25명 가운데 8명(32%)은 5년 이상 은둔했거나 은둔 중이었다. 10년 이상 운둔한 사람도 5명(20%)이었다.

좌절 경험 때문에 은둔을 시작한다. 은둔을 하면서 무기력, 우울증, 수치심이 깊어진다. 이러한 심리와 감정으로 인해 은둔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약해진다. 은둔 탈출을 시도하더라도 작은 실패에 쉽게 좌절한다. 좌절이 다시 은둔을 유발한다. 그 결과 은둔은 장기화된다.

은둔의 장기화 경향은 은둔형 외톨이 인터넷 카페 통계로도 나타났다. 취재팀이 카페에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한 결과, 은둔 기간이 10년 이상(15.3%)인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5년(13.2%), 1년(12.7%)이 많았다. 5년 이상 은둔 중이라고 답한 사람은 41.8%였다.


▲ 취재팀이 은둔형 외톨이 인터넷 카페에 4년 6개월간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한 결과, 은둔 기간 10년 이상(15.3%)인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5년 이상 은둔 중이라고 답한 사람은 41.8%였다. ⓒ 현경아


김옥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장은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려고 해도 주눅 들어 있어서 못하게 되고, 결국 쓸모없는 사람, 실패자, 낙오자라고 스스로 낙인을 찍은 상태로 오랫동안 은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자연(28·여·가명) 씨도 은둔을 벗어나려다가 더 오랫동안 은둔했다. 고등학교 1학년에 자퇴하고 경상남도 김해시 고향집에서 은둔을 시작했다. 은둔 초기 3년은 집에만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아르바이트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편의점 일을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주일 만에 잘렸다. 이후 더 무기력해졌다.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자연 씨는 “우울증과 자기혐오가 심해졌다”고 말했다. 스스로에게 ‘죽어버리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고 표현했다. 좌절은 기나긴 은둔으로 이어졌다. 자연 씨는 이후 7년간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은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은둔 청년은 심리적으로 더 힘들어진다. 고통은 당사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은둔 청년 주변 사람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은둔은 주변으로 스며든다.


'은둔 청년 25인 보고서'는 <한겨레21> 제1390호 표지 기사(링크)로도 게재됐습니다.


편집: 박성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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