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뉴스웍스] [은톨이 보고서①] 끊을 수 없는 '폭력의 굴레'…청년 가둔 '철창' 곳곳 (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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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톨이 보고서①] 끊을 수 없는 '폭력의 굴레'…청년 가둔 '철창' 곳곳


청년들이 숨고 있다. 대한민국 청년 100명 중 2~4명은 방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고립·은둔 상태다. 일반적으로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고립' 상태에 놓였다고 본다. 고립된 상태에서 외출이 거의 없이 본인의 방 또는 집안에서만 6개월 이상 생활하면 '은둔'하고 있다고 정의한다. 소위 말하는 '은둔형 외톨이(은톨이)'다. 

현재와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 세대가 휘청거리면 사회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활력도 잃게 된다. 경제구성원으로 제 몫을 하지 못한 채 주변만 겉도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심각성은 커진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립·은둔 청년이 사회 문제로 부각된 일본에선 80대 부모가 50대 은톨이를 돌보고 있다. 꼭꼭 닫은 고립·은둔 청년들의 방문을 열기 위해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고립·은둔 청년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아직 냉랭하다. 원인과 이유를 파악하고 함께 극복하자는 연대의 정신을 발휘하기보다는 '패배자',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섣불리 찍으면서 거리두기에 나서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나 지원책도 마땅치 않다. 최근에야 고립·은둔 청년의 실태가 부각되면서 첫발을 뗀 수준이다. 

청년들은 왜 스스로를 가뒀을까. 무엇을 힘들어하나. 어떻게 도와야 할까. 뉴스웍스 취재팀은 30여 명의 고립·은둔 청년들의 사례를 취재했고, 이 중 10여 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지원단체 관계자와 전문가 10여 명과 만나 고립·은둔을 촉발하는 사회 구조적 요인과 지원책의 허점들도 들여다봤다.   



뉴스웍스 취재진이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폭력의 굴레'를 끊지 못한 청년들은 각자의 방 안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 취재진이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은 가정폭력, 학교폭력, 데이트폭력 등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폭력의 굴레'를 끊지 못한 청년들은 각자의 방 안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구구단이 문제였다. 학교 구구단 암기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한 그날, 아버지의 모진 매질이 시작됐다. 발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아팠다.

다음날 일은 더 커졌다. 아버지가 식칼을 들고 "널 죽이고 잘못 키운 죄로 나도 죽겠다"고 고함쳤다. 그의 싸늘하게 희번덕거리는 눈은 부모들의 의례적인 윽박지르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조필근(가명·41세)씨는 "인생 최악의 공포를 느꼈어요"라며 "아버지, 더 나아가 부모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나온 순간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필근씨가 9세 시절 겪은 비극이었다. 

교사였던 필근씨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관심했다. 평소 교우관계, 학교생활 무엇 하나 묻는 법이 없었다. 다만 필근씨는 아버지의 무관심이 싫지 않았는데, 그가 필근씨에게 관심을 가지는 날은 아들의 행동이 거슬릴 때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날은 어김 없이 회초리가 날아왔다. 심한 날에는 주먹질과 발길질까지 해댔다. 자연히 필근씨가 기억하는 학창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은 잊고 싶은 기억들뿐이다. 

전염이라도 되는 걸까. 가정폭력 피해자인 필근씨는 학교에서도 정신·신체적 괴롭힘에 시달렸다. 필근씨의 일거수일투족이 놀림거리였다. 어릴 때 태권도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는 고등학생이 되자 매일 갚지도 않을 돈을 빌려달라고 필근씨를 닦달했다.

탈출구는 없었다. 용기를 내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아버지는 도리어 필근씨를 혼냈다. 자초지종을 들을 생각도 없이 종아리가 터져라 매질을 했다. "약자처럼 사는 것이 쪽팔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필근씨는 이 '폭력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느꼈다. 대입 후 자취방이라는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 필근씨는 당연하다는 듯 은둔에 들어갔다. 꼬박 8개월 동안 남들 눈에 안 띄는 저녁에만 방문을 열었다. 이후 40살이 넘는 지금까지 간헐적으로 은둔을 반복하고 있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삶의 무게에 짓눌리다 고립·은둔하는 청년(19∼39세)들이 서울에만 약 13만명으로 추산된다. 서울에 거주하는 전체 청년(약 285만명)의 4.5%가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셈이다. 전국 단위로 보면 서울 송파구 인구(65만8000명)에 육박하는 61만명의 청년이 두문불출하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인원도 상당히 많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한국보다 일찍 고립·은둔 문제가 대두된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약 100만명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가볍게 보기 어려운 숫자다.  

청년들이 방문을 닫게 되는 이유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렵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고립·은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을 순 있지만, 임계점을 넘게 한 다양한 요인들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옥란 푸른고래리커버리센터장은 "고립·은둔 사연들을 보면 스펙트럼이 너무나도 넓어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립·은둔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키워드들은 찾을 수 있었다. 필근씨를 포함해 뉴스웍스가 취재한 30여 명의 청년들이 밝힌 고립·은둔 계기는 제각각이었지만 '폭력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동일했다. 개개인마다 가해자와 폭력의 수위·지속성 등은 달랐지만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 신체·정신적 폭력을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이러한 경험은 청년들의 인생을 흔들고 뒤엉키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필근씨의 경우처럼 방 안에 틀어박히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까지 진행된 실태조사에서도 폭력과 고립·은둔의 상관관계가 발견됐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고립·은둔 청년들이 성인기 이전에 '학교나 동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57.2%)', '부모님이 나를 심하게 때리거나 꾸짖고 모욕했던 경험(51.2%)이 있었다. 광주광역시가 2020년 발표한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에서도 조사 대상의 70.9%가 왕따·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었고, 48.1%가 부모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부터 1년 반 동안 은둔한 장영걸(24세)씨 역시 '가정의 해체'를 은둔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영걸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컸다. 술이 문제였다. 취한 아버지는 집에 있는 물건을 모조리 때려 부수며 가족들을 공포로 몰아갔다. 신체적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1년에 한번 이상은 아버지의 무자비한 매질이 있었다고 영걸씨는 회고했다. 영걸씨와 어머니, 누나가 모두 피해자였다. 술 취한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경찰이 출동한 것도 세 번이나 됐다. 결국 아버지가 접근금지 명령을 받으며 가족들은 산산이 흩어졌다. 영걸씨는 고시원에, 누나는 원래 가족들이 살던 집에, 어머니는 외갓집에 가서 살았다. 접근금지 명령이 끝난 지금도 가족들은 서로 얼굴을 거의 보지 않고 산다. 

10년간 고립·은둔한 경험이 있는 김주영(가명·37세)씨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다. 가해자는 20대 때 만난 연인이다. 당시 학원에서 일하며 적잖은 돈을 벌던 주영씨지만 그의 영향으로 항상 돈에 쪼들렸다. 매달 500만원 상당의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액수가 모자라는 날은 모텔에 들어가 밤새 맞아야 했다. 그렇게 주영씨는 몇 년을 데이트폭력 피해자로 살았다. 

27살 나인채씨는 아버지를 고소한 경험이 있다. 고3 때 일이다. 늘 참아왔지만 더이상 가혹행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경찰에 신고했고, 검찰까지 송치됐다. 어머니의 간청과 아버지의 협박에 못 이겨 고소를 취하했지만 얼마 안 남은 가족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다. 20살이 된 인채씨는 독립과 은둔을 시작했고, 생계는 게임 아이템을 팔아 해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폭력의 가해자가 1명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는 점이다. 필근씨처럼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학교폭력, 직장 내 폭력 등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았다. 마치 '피식자'라는 낙인이 찍힌 것처럼 그들은 번번이 집단 내에서 사냥감이 됐다. 스스로를 가두는 것만이 폭력의 굴레를 끊는 일이라고, 취재진이 만난 많은 고립·은둔 청년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영걸씨는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했다. 물리적 폭력도 있었지만, 그보다 언어적인 폭력이 심했다. 영걸씨가 하는 모든 행동이 놀림감이 됐다. 그는 자신을 "소위 말하는 '찐따'였다"고 전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영걸씨는 주변인들과 섞이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고립·은둔을 시작했다. 

주영씨는 폭력을 일삼던 전 연인과의 만남을 이어간 이유가 "잘못 형성된 성에 대한 가치관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린시절 친할머니댁에서 살았던 주영씨는 수년간 이웃에게 그루밍 성범죄를 당한 기억이 있다. 바쁜 할머니 대신 주영씨를 돌봐주던 이웃집 할아버지는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를 예뻐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수시로 불쾌한 스킨십을 이어갔다. 입에 담기 어려운 변태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주영씨가 가장 싫어했던 것은 밥 위에 정액을 뿌려 섞어 먹게 하는 것이었다. 그 비린내가 아직도 나는 듯해 주영씨는 흰쌀밥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주영씨가 기억하는 첫 가해자다. 그리고 주영씨는 그가 자신의 삶 전반을 옭아매고 있는, 폭력이란 굴레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주영씨는 "당시 상황이 연상될 때마다 머리를 감싸고 소리 지르며 잘못했다고 비는 상황이 수차례 있었다.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하기 힘들었다"며 "강압적인 상대방의 태도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늘 애정을 원했고, 사랑을 구걸하게 됐다. 상대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거나 요구하는 돈을 쥐여주고 나면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착각을 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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