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뉴스웍스] [은톨이 보고서②] 삶 옭아매는 '실패의 기억'…취업 좌절 '결정타' (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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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톨이 보고서②] 삶 옭아매는 '실패의 기억'…취업 좌절 '결정타'


고립·은둔 청년 김찬기(25세·가명)씨의 방. (사진=본인 제공)

고립·은둔 청년 김찬기(25세·가명)씨의 방. (사진=본인 제공)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핑계로 들릴 수 있겠지만,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수업 중은 물론이고 점심시간, 자율학습 시간에도 잠이 왔다. 심지어 게임을 할 때 잠이 든 적도 있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희미했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언제 잤는지 모르게 잠들었던 어느 날 수업시간엔 눈을 떠 보니 코피가 줄줄 흘러 상의가 흠뻑 젖어 있기도 했다. 왜 코피가 났을까. 김찬기(25세·가명)씨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찬기씨가 '기면증'이란 질환을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기면증은 충분한 야간 수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낮 시간이나 오후 시간에 심한 졸림으로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지는 질환을 뜻한다. 졸음을 느끼며 서서히 잠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잠에 빠져드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을 칭찬하는 담임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공부에 열을 올리던 찬기씨는 갑작스럽게 만난 기면증이라는 벽에 부딪혀 모든 걸 포기하게 된다. 성적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지만 방법이 없었다. 끝도 없는 무력감이 밀려왔다. 유독 무력감이 심한 아침에는 자살 충동을 이겨내기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적당히 성적을 맞춰 대학에 진학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학업에 대한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죠. 그 순간 무너져 버린 것 같아요." 찬기씨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약 2년 동안 은둔했다.

뉴스웍스 취재진이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은 나이, 학력, 가족관계, 생활 환경, 고립·은둔 계기 등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실패의 기억'이 이들을 옭아매고 있다는 점만은 동일했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학업, 취업, 결혼 등 삶 전반에서 잦은 실패를 겪었다. 계속된 좌절은 청년들을 두렵게 했고, 점차 도전 의지를 약화시켰다. 도전하지 않으면 최소한 실패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런 자기 위안이 방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붙잡았다. 

찬기씨처럼 부족한 학업 성취로 괴로워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절반 이상(52.1%)이 성인기 이후 '내가 원했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던 경험'을 겪었다. 국무조정실 2022년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서는 7.9%, 광주광역시 은둔형외톨이 실태조사(2020)에서는 13.5%의 응답자가 학업 중단이나 진학 실패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고립·은둔 청년들은 학업, 취업, 결혼 등 삶 전반에서 잦은 실패를 겪었다. 이러한 '실패의 기억'들은 그들이 방문을 열기 어렵게 했다. (사진=픽사베이)

고립·은둔 청년들은 학업, 취업, 결혼 등 삶 전반에서 잦은 실패를 겪었다. 이러한 '실패의 기억'들은 그들이 방문을 열기 어렵게 했다. (사진=픽사베이)


"제 모든 삶과 시간을  바쳤어요. 무수한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고집을 부렸죠. 지금 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너 그럴 줄 알았다'는 조롱은 남았네요." 김주영(가명·37세·은둔 기간 10년)씨 역시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여기던 학업의 실패를 고립·은둔의 중요한 계기로 꼽았다. 재수까지 했지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고 이후 도전한 사법시험, 법무사 시험, 로스쿨 시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주영씨는 "어느 순간부터는 등록해 놓은 학원에도 나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라고 털어놨다.   

취업의 어려움이 고립·은둔을 결행하는데 있어 '방아쇠'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실패를 겪던 청년들이 취업마저 성공하지 못하면서 사회에 섞이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금까지 진행된 대부분의 실태조사에서도 취업 실패가 고립·은둔의 계기로 가장 많이 거론됐다. 서울시 조사에서는 고립·은둔 청년 상당수가 '내가 원했던 때에 취업을 못했던 경험(64.6%)'과 '내가 원했던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던 경험(60.7%)'을 성인기 이후 겪었던 부정적 경험이라고 답했다. 국무조정실 조사(35.0%)와 광주시 실태조사(27.8%)에서도 청년들은 고립·은둔의 주된 계기로 취업 실패를 꼽았다. 

이지혜(가명·34세)씨도 오랜 취업 준비 기간의 어려움으로 5개월의 짧은 고립 경험을 느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인생에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취업 준비만 5년 한 것 같아요"라며 "당시 고립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취업 준비만 하다 보니 세상에 대한 정보도 없고, 트렌드에도 못 따라갔죠"라고 전했다.  

한번 넘어져 발목 등이 다치면 또 넘어지기 쉽다. 거듭된 실패는 때론 청년들을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았다. 학업 실패 등으로 고립·은둔한 경험이 있는 주영씨는 그 여파로 결혼 생활도 망쳤다. 이미 건강하지 못하게 된 정신 상태가 원인이었다. "2022년 5월 초 자살 시도를 했어요. 다섯 번째였습니다. 남편은 이런 저에게 지쳤고 한편 두려웠겠죠. 제가 의식을 찾자마자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늘 저에게 성실했고, 최선을 다했었으므로 바로 수락했죠. 이해했습니다." 

1년 반 동안 은둔했던 장영걸(24세)씨도 은둔 기간 목을 맨 경험이 있다. 가정 폭력, 학업 실패 등이 겹쳐 생긴 극심한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목을 감은 블라인드 줄이 영걸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영걸씨는 "다른 사람들만큼 잘 살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는 것도 느리고 시작도 늦고.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습니다"라고 당시를 돌아봤다. 

실제로 부산복지개발원의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21.5%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 중 10.5%는 극단적 선택을 10회 이상 반복했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 있다'는 응답은 77.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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