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톨이 보고서③] 경계선 지능·ADHD로 '느린 학습자' 상당수…
주변 비아냥 겹쳐 자기 비하 '심각'
고립·은둔 청년 수관 씨가 썼던 유서의 일부분. 그는 IQ 72의 경계선 지능인이다. (사진제공=두더지땅굴)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저는 지능지수(IQ) 72인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사회는 저 같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려 합니다. 이 현실에 절망할 뿐입니다."
고립·은둔 청년들의 소통 플랫폼 '두더지 땅굴'에 남아있는 수관(20대·닉네임) 씨의 유서 일부다.
수관 씨는 경계선 지능인이다. 통상적으로 IQ 85 이상은 정상, 70 이하는 지적장애로 분류된다. IQ가 71~84 사이에 속할 때 경계선 지능이라고 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지능 장애가 아니어서 장애인들이 받는 돌봄이나 복지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암기 능력이나 분별력, 인지능력 등이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쉽지 않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말 그대로 경계선에 서 있는 셈이다.
은둔 중이던 수관 씨는 자신이 경계선 지능이란 사실을 알게 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언젠가는 나도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다는, 막연했던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에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경계선 지능이란 것을 알게 된 뒤, 내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란걸 알게 된 거죠. 세상이 싫었어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지금은 어느 정도 은둔 상태에서 벗어난 수관 씨이지만 아직도 희망이란 말엔 거부감을 느낀다. 그는 "희망을 찾으려고 하면 더 상처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느낌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살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털어놨다.
뉴스웍스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은 선천적으로 '느린 학습자'인 경우가 많았다.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정서·행동 문제 등으로 주의·집중하기 힘들거나, 적절한 상황 판단이나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
감정 표현이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학업, 업무, 인간관계 등 삶 전반에서 '덜 떨어졌다'는 비아냥을 듣고 살았다. 이를 빌미로 주변인들의 괴롭힘이 시작된 사례도 빈번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멈출 수 없는 자기 비하다. 수관 씨처럼 남들과 다른 자신을 가장 심하게 몰아세우는 주체는 바로 본인인 경우가 많았다.
'느린 학습자'인 고립·은둔 청년들은 냉랭한 주변 시선과 이로 인한 끊임없는 자기 비하로 괴로워했다. (사진=픽사베이)
장영걸(24) 씨는 입대를 위해 받은 신체검사에서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 것을 알게 됐다. 영걸 씨의 언어 지능은 남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공간 지능과 동작성 지능 등이 현저히 떨어져 추론이나 빠른 판단이 힘든 상태다.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 것을 알게 된 순간, 영걸 씨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항상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인생을 살았던 이유를 알게 됐죠"라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다.
영걸 씨는 학창 시절부터 '좀 모자란 애'로 통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또래들의 놀림감이었다. '눈치 없다', '찐따'라는 말은 너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공무원을 해봐라', '기술을 배워보라'는 부모님의 기대 역시 그에게는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경계선 지능은 영걸 씨의 삶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고, 그가 1년 반 동안 은둔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법학 분야 전문가가 되는 것을 꿈꿨던 김주영(37·가명) 씨는 좌절감에 못 이겨 10년간 은둔했다. 대학 입시, 사법시험, 법무사 시험, 로스쿨 시험 등 도전한 모든 시험에서 실패한 탓이다. 게을렀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학업을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여길 만큼 공부에 몰두했다. 주영 씨가 선천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습장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분야의 고스펙 친구들과의 비교가 항상 뒤따랐고, 저는 그 분위기에 압도돼 있었어요"라며 "실패가 계속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학원에도 나가지 못했죠. 나는 안되는 사람이구나.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지인의 연락도, 부모님을 뵙는 것도 두려워졌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조차 나가지 못했어요."
느린 학습자로 태어나 어렵게 보낸 성장 시기의 기회 불평등은 사회 진출 연령에 들어서서는 취업 등 자립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경계선 지능, ADHD, 불안장애 판정을 받은 김지은(29·가명) 씨는 사회에 섞이기가 어려워 5년 가량 은둔한 경험이 있다.
지은 씨는 "직장을 구해 일을 할 때마다 남들보다 실수가 잦았습니다. 업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속도도 많이 느렸어요"라며 "꼼꼼하지 못하고 느리다며 자주 혼났죠. (직장에서) 잘린 적도 많아요. 이런 일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 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점점 집에만 있으려고 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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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톨이 보고서③] 경계선 지능·ADHD로 '느린 학습자' 상당수…
주변 비아냥 겹쳐 자기 비하 '심각'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저는 지능지수(IQ) 72인 경계선 지능인입니다. 사회는 저 같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려 합니다. 이 현실에 절망할 뿐입니다."
고립·은둔 청년들의 소통 플랫폼 '두더지 땅굴'에 남아있는 수관(20대·닉네임) 씨의 유서 일부다.
수관 씨는 경계선 지능인이다. 통상적으로 IQ 85 이상은 정상, 70 이하는 지적장애로 분류된다. IQ가 71~84 사이에 속할 때 경계선 지능이라고 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지능 장애가 아니어서 장애인들이 받는 돌봄이나 복지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암기 능력이나 분별력, 인지능력 등이 비장애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기 쉽지 않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말 그대로 경계선에 서 있는 셈이다.
은둔 중이던 수관 씨는 자신이 경계선 지능이란 사실을 알게 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언젠가는 나도 남들처럼 잘 살 수 있다는, 막연했던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에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가 경계선 지능이란 것을 알게 된 뒤, 내가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이란걸 알게 된 거죠. 세상이 싫었어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지금은 어느 정도 은둔 상태에서 벗어난 수관 씨이지만 아직도 희망이란 말엔 거부감을 느낀다. 그는 "희망을 찾으려고 하면 더 상처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느낌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살겠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털어놨다.
뉴스웍스가 만난 고립·은둔 청년들은 선천적으로 '느린 학습자'인 경우가 많았다. 상당수가 ▲경계선 지능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정서·행동 문제 등으로 주의·집중하기 힘들거나, 적절한 상황 판단이나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
감정 표현이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학업, 업무, 인간관계 등 삶 전반에서 '덜 떨어졌다'는 비아냥을 듣고 살았다. 이를 빌미로 주변인들의 괴롭힘이 시작된 사례도 빈번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멈출 수 없는 자기 비하다. 수관 씨처럼 남들과 다른 자신을 가장 심하게 몰아세우는 주체는 바로 본인인 경우가 많았다.
'느린 학습자'인 고립·은둔 청년들은 냉랭한 주변 시선과 이로 인한 끊임없는 자기 비하로 괴로워했다. (사진=픽사베이)
장영걸(24) 씨는 입대를 위해 받은 신체검사에서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 것을 알게 됐다. 영걸 씨의 언어 지능은 남들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공간 지능과 동작성 지능 등이 현저히 떨어져 추론이나 빠른 판단이 힘든 상태다.
자신이 경계선 지능인 것을 알게 된 순간, 영걸 씨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항상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인생을 살았던 이유를 알게 됐죠"라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다.
영걸 씨는 학창 시절부터 '좀 모자란 애'로 통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또래들의 놀림감이었다. '눈치 없다', '찐따'라는 말은 너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공무원을 해봐라', '기술을 배워보라'는 부모님의 기대 역시 그에게는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경계선 지능은 영걸 씨의 삶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고, 그가 1년 반 동안 은둔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법학 분야 전문가가 되는 것을 꿈꿨던 김주영(37·가명) 씨는 좌절감에 못 이겨 10년간 은둔했다. 대학 입시, 사법시험, 법무사 시험, 로스쿨 시험 등 도전한 모든 시험에서 실패한 탓이다. 게을렀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학업을 인생의 가장 큰 가치로 여길 만큼 공부에 몰두했다. 주영 씨가 선천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습장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꿈을 이뤘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분야의 고스펙 친구들과의 비교가 항상 뒤따랐고, 저는 그 분위기에 압도돼 있었어요"라며 "실패가 계속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학원에도 나가지 못했죠. 나는 안되는 사람이구나. 세상이 무서웠습니다. 지인의 연락도, 부모님을 뵙는 것도 두려워졌습니다. 가까운 편의점조차 나가지 못했어요."
느린 학습자로 태어나 어렵게 보낸 성장 시기의 기회 불평등은 사회 진출 연령에 들어서서는 취업 등 자립의 어려움으로 이어졌다. 경계선 지능, ADHD, 불안장애 판정을 받은 김지은(29·가명) 씨는 사회에 섞이기가 어려워 5년 가량 은둔한 경험이 있다.
지은 씨는 "직장을 구해 일을 할 때마다 남들보다 실수가 잦았습니다. 업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속도도 많이 느렸어요"라며 "꼼꼼하지 못하고 느리다며 자주 혼났죠. (직장에서) 잘린 적도 많아요. 이런 일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 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점점 집에만 있으려고 하게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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