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청년]고립은둔청년의 자립 사례 <J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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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버리센터를 방문하는 청년들은 가정에서의 어려움, 학교에서의 소외됨, 사회에서의 단절을 경험하고서 자신을 방 안에 가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합니다. 이번엔 리커버리센터를 통해 사회복귀를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J군 이야기


1. Before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폭력이 있다. 대부분의 폭력은 법적, 도덕적, 사회적으로 처벌을 받지만, 훈육이 목적이거나 아동/청소년기 시절의 폭력은 처벌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폭력은 명분이 있다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나도 비슷한 종류의 폭력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결벽증이 있는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소심하고 자기주장 못하는 아이가 된 초등학생은 친구가 없었다.

친구를 만들려고 pc방에 같이 가 좋아하지도 않는 게임을 하거나, 일부러 집에 초대해 밤새 게임을 한 적도 있었다.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며 친구들 틈에 끼려고 애썼다.
                   
중학교1학년 때 사건이 있었다. 수련회 가는 버스에서 자리 때문에 다툼이 벌어졌는데, 그 결과 나는 혼자 앉아야 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점점 집단에서 배제되었고, 배제는 곧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기도 하고 대항하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사회성이 없어서 그렇다는 말과 이해할 수 없다는 말 등 나를 탓하는 말들만 계속될 뿐이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의 생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생겼다. 아이들을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었고,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엎드려 있었다. 고등학생 때 다른 도시로 전학까지 갔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망상까지 겹쳐서 ‘애들이 내가 왕따인 것을 알면 어떻게 하지?’, ‘날 또 괴롭히면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이 수시로 따라왔다.
                   
결국 고등학교 자퇴를 결심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으나 이해받지 못했다. 자퇴 이후 냉전 상태로 지내다가, 수능 공부라도 하라며 부모님은 나를 재수학원에 집어넣었다. 학원에서 만난 형들 때문에 학교 못지않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러다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다시 돌아온 집은 여전히 편한 장소는 아니었다. 엄마 눈치 보느라 공부하는 척 했지만 이미 체념했었다. 어차피 대학에서도 적응 못할 것이 뻔한데 공부해서 뭐하지 라는 생각이 망령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에 빠졌다. 애니메이션 속 세상이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다.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공간. 이후 검정고시 성적으로 대학을 갔지만, 역시나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만두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집에서만 머물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렇게 방황하며 우울과 허무에 찌들어 살다가 청년재단에서 <은둔청년 지원사업>을 한다는 공지를 봤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신청했다. 다행히 합격해 리커버리센터로 배정 받았다.

                   



2. Meet the Recovery Center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 오자마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하다보니 날이 저물어 리커버리-하우스(공동생활 숙소)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갈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 구석에 있다가 코치님에게 약을 먹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코치님은 리커버리센터와 연계된 신경정신과병원에 나를 데리고 갔고, 이미 퇴근한 의사 선생님께서 급히 돌아오셔서 진료를 해주시고 약을 처방해 주셨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가장 감사한 기억이다. 이렇게 나의 센터 생활이 시작되었다.

2020년 6월부터 2021년 12월 말까지 1년 반의 기나긴 여정. 어디서부터 그려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힘든 적도, 불평불만을 가진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 행복한 추억처럼 느껴진다.

팍팍한 삶 속에서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더 성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숙고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아, 내가 그때 이렇게 했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은 나를 지금보다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처음에 센터에 올 때는 대인공포를 극복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왔지 사람들을 좋아하거나 사람이 그리워서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했고 지금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사람을 대할 때는 경계심 가득한 마음을 가진 채로, 이 사람으로부터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거래가 가능한지 계산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한다. 냉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오히려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왕따로 지낸 사람이 사람을 좋아해서 센터에 왔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의심이 많아진 탓에 솔직한 사람에게 호감이 갔고, 솔직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신념 하나로 내 마음을 바닥 끝까지 사람들에게 오픈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센터에 오자마자 왕따 이야기에, 내가 살아온 삶을 이야기할 때는 부끄럽고 사람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부터 했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오픈하고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 것 인지 밝혔다.

사람들을 신뢰해서가 아닌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믿기 위해서, 더 이상 어떤 부끄럼도 존재하지 않는 ‘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말이다. 배제될 공포를 각오한 채 모든 것을 오픈했다. 리커버리센터가 아니면 이런 훈련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혼내는 사람이 생겼는데, 혼내는 사람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소중한 사람이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혼자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헬스는 하고 싶으나, 헬스장 안내 카운터까지 가지도 못하던 사람이, 혼자 등록하고 헬스 다니고, 토요일마다 스피치 모임에 참석하고,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리셉션 데스크 일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세상이 무섭고 공포스러운 지옥이 아닌 좋은 사람들이 많은 안전한 공간으로 느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으로부터 공포가 아닌, 정을 느끼기 위해서 또 내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 위해 (혹은 최소한 미움을 사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3. After and Ever...


앞으로의 계획은 전공 중인 사회복지 공부에 전념하고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 더 많은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좁은 틀을 깨며 도전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또 사회복지사의 길을 선택한 만큼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헌신하며 살려고 한다.

이것이 내 순수한 마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시도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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